용산이라면 예전에도 몇번 가본 적이 있다. 이태원과 한남동은 외국인이 많아서 다른 어느 곳보다 확실한 기분 전환이 된다. 주변에 또 다른 행성이 돌아다니는 기분이다. 이렇게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말해주는 또 하나의 샘플들이 걸어다닌다. 그러한 눈빛, 그러한 표정, 그러한 여유로움, 그리고 그러한 유쾌한 웃음.
명동이나 인사동의 외국인과는 다르게 이태원 인근은 실제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볼 수 있어서 뭐랄까 같은 인간으로서의 동질감을 느끼곤 한다. 그들도 살다보면 직장 스트레스, 불친절한 직원과 마주하는 일, 짜증나는 이웃과의 관계, 배수관이 얼었을 때 어떤 조치를 취할지, 따분하고 반복되는 일상을 이겨내는 생활인으로서의 고민을 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암튼 한강진역에 내려 발길 닿는대로 가본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어딜 꼭 가야겠다 하고 갔을 때보다 그냥 마음 내키는대로 갔을 때 좋은 곳을 많이 찾았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걷다 보니 용산 공예관이 나왔다.
역시 아무런 정보 없이 갔기에 들어섰을 때의 감격은! 입구부터 멋진 작품들이 나를 반겼다.
연꽃잎의 위치라든지, 뿌리를 연상시키는 긴 손잡이. 뭐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한 거지?
플레이트가 너무 예쁜 다기 세트
찻잔 내부의 골드컬러가 돋보이는 다기세트
의궤를 소재로한 찻잔세트
너무 귀여운 새모양 손잡이
찻잔 안에 까지 조각이 장식된 디테일에 놀라워 하며...
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느라 힘들었다. 왜 이렇게 예쁘지? 난 심지어 인사동에 한 건물 전체가 다기용품으로 이루어진 곳을 가봤었지만 여기 몇 개 있는 다기들의 예술성이 훨씬 뛰어나게 생각되었다. 다기 자체가 작은 소품이다 보니 디테일이 귀엽고 참신하고 예술작품 같다.
그리고 다음 번에 한번 더 가면 꼭 사와야겠다 생각했던 블루 컵.
솔방울 디테일이들어간 손잡이 컵. 그리고 이봉창 의사를 소재로 한 잔까지.
또 마음에 쏙 들었던 삼베무늬 컵. 뭐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손으로 집으면 접힐 것 같고 물이 닿으면 젖을 것 같은 디테일한 삼베 문양을 잘 표현해 냈다.
커피 드리퍼. 이걸로 커피마시면 마음이 더 차분해질 듯. 가격이 착해서 누군가에게 선물해주면 좋을 것 같다.
색감과 입구 모양이 너무 아름다운 그릇. 들다가 깨질까봐 자주 사용하진 못하겠지? 뭘 담아내지 않아도 그 자체가 예술이다.
세일 중인 신선미 작가의 엽서 시리즈. 메모지도 예쁘다.
결코 쓰지 못할 것 같은 비누들. 전통의상들도 상당히 디테일하다.
장인들이 조각한 가구.
이외에도 1천만원에 육박하는 도자기도 있었고, 한지로 만든 드림 캐쳐도 있었다. 인사동, 남대문, 명동 등 가이드를 하면서 수많은 기념품 샵을 가봤고, 도자기 샵도 많이 가보았지만 여기만큼 아기자기하고, 가끔 비싼 것도 있지만 가격대도 괜찮은 제품군도 많은 곳은 드물다. 외국인에게 한국을 기억나게 할만한 귀한 선물을 하고 싶을때, 아니 외국인이 아니더라고 귀한 사람에게 정갈한 선물을 해주고 싶을 때 아주 좋은 곳이라고 추천하고 싶다.
우연히 들렀는데 그 곳이 너무 괜찮은 곳이었다면 그건 우연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나를 그곳에 인도해주셨다고 항상 생각한다. 너무 좋기 때문이다.
왠만한 곳은 다 가봤다고 생각했는데. 용산구를 더 탐험할 의지가 생겼다.
더 새롭고 좋은 곳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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