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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속의 GPS

개운사(돈은 없는데 커피는 마시고 싶을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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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에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하다가 무작정 버스를 탔다.

가이드할 때 경로로 추가할 겸 예전에 지나치기만 했던 고려대 근처의 개운사에 가보기로 했다.

 

가는 길에 엄마의 전화로 상당한 부담을 느꼈다. 왜 나는 주일마저 이런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할까 생각했다. 

내가 신용이 있으니 다른 형제들에게 돈을 대신 빌려달라고 하시는 것. 내가 젊었을 때는 얼마든지 내가 대신 할 수 있고 메꿀 수 있고 회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그럴 여력이 없다. 그러기에 좌절감이 더 크다. 내가 쉬어야할 때 그런 연락을 받으면, 쉬는 것 조차 하지 않고 쉬는 동안에도 돈 벌 궁리를 해야만 할 것 같고, 모든 한 숨 돌리는 것도 사치로 느껴지고 그렇다. 엄마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자식으로서 도와드리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는 것들, 극복하는 방법들을 올려놓으면 누구라도 힘을 받지 않을까 해서이다. 1년 후에, 3년 후에, 그 누구라도.

 

안암역 2번 출구에서 나와서 골목길을 따라 쭉 걸어가면 어렵지 않게 개운사를 찾을 수 있다. 오르막길을 꽤 걸어야한다.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나는 올라가자 마자 무엇이든 마시고 싶었다. 오르막길이 힘들어서도 그렇고 마음이 답답해서도 그랬다. 오르막길 왼편에 마침 천막친 곳에 가격표 어쩌고 하는게 붙어 있고 믹스커피 박스가 개봉되어 있어서

 

"커피 한잔에 얼마예요?"라고 물었더니 

"그냥 드시면 됩니다" 라고 답한다.

 

내심 고마워하며 한 잔 타서 밖으로 나왔다. 주말에 가끔 까페에서 커피마시며 멍때릴 때도 있는데 요즘엔 그게 좀 효과가 없을 때도 있다. 특히 좁은 공간에 테이블 간 거리가 가깝거나, 커플들로 가득 둘러싸여 있을 때. 왠지 커피값을 낭비한 기분이 든다. 오늘도 어디든지 한적한 까페가 있으면 커피 한잔 할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절에서 커피를 마시게 될 줄이야. 한적한 의자가 있는 곳에 와서 커피마시며 오늘 있었던 일들을 묵상한다. 나는 교회를 다니지만 절도 어떤 수행을 하고 절제를 하는 곳이어서 인지, 아니면 바위의 정기가 서려서 인지, 분위기가 사뭇 신성하고 묵상하기에 좋다. 

 

엄마는 밭을 사서 돈을 벌려고 돈을 빌리시는 것이다. 문제는 자신에게 돈이 없으면 안해야하는데, 그간 빚도 있고 어쨌건 소득을 발생시켜야 하니 나에게 까지 돈을 빌리신다. 자식으로서 참 난처하다. 내가 안되면 거기서 끝내야 하는데 나의 신용을 이용해 다른 형제들에게 돈을 빌려서 달라고 하신다. 정말 거절하기가 어렵지만 이번에 단호하게 어렵다고 말했다. 마음이 참 좋지 않다. 왜 이런 일들이 끊임없이 생길까.

 

믹스커피를 한 모금 마실 때마다

"그래, 그 다음 고민 말해봐"

라고 말하는 상담 선생님의 안정감 있는 유도 질문을 받는 기분이다.

 

고난에 대해 생각한다. 설교말씀도 참고해서 묵상한다. 고난이란, 이해가 안되고, 내 능력보다 과부하이고, 그 상황으로 인해 어떠한 유무형의 위협을 받고 있고, 내 노력이 작동하지 않을 때. 그것을 고난이라고 한다. 이럴 때 자연인은(정상인, 일반인) 조급하고 호들갑을 떤다고 한다. 그러나 그럴 때 하나님의 영이 있는 사람, 고난 조차도 하나님의 절대 주권 안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믿는 사람들이 신앙인이다. 이해가 안되지만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검증하지 않고 가는 것, 그게 믿음이라고. 내 힘의 한계를 느끼면 무한대의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 위로 부터 나의 연약함을 채울 때 그 때 강해지는 것이다. 모든 고난이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안에서 다루어지고 있다고 믿어야 한다고 그랬다. 사람을 만나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한 단계 아래 수준의 대처 방안이다. 

 

절에서 여기까지 생각하니 마음이 훨씬 좋아졌다. 그리고 기도한다. 엄마의 생각과 사고를 바꿔주시라고. 그렇게 까지 해야하는 엄마의 마음도 이해하게 된다. 절에서 커피마시며 주님께 기도라니. 파격적이다. 부처님이 알면 황당하다 하실까.

 

어쨌든 좋은 시간이었다. 조계사나 종로에 있는 절도 많이 가보았지만 이렇게 높은 위치에 있는 절에 와보니 왠지 한 수 위의 존재에 다다른 기분이다. 공짜로 커피도 마시고. 내 힘으로 안되는것 하나님께 맡기기로 다짐도 하고. 역시 커플들에 둘러싸여 부끄럽지 않은 척 하고 앉아있는 것보다는 사찰까페가 100배는 낫네.

 

꿀팁. 기나긴 내리막길은 뒤로 걸어내려오면 무릎이 덜 아프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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